주간경향 937호

‘심심이 어록’이 화제다. 심심이? 심심이는 이즈메이커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채팅 로봇이다. 쉽게 말해 심심할 때 심심이에게 문자를 보내면 심심이가 알아서 적절한 답을 보내온다.
그런데 화제를 모으는 까닭은 심심이의 입심이다. 이쪽에서 욕설을 하면 맞받아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의혹이 떠오른다. 심심이 너, 혹시 인간 아니냐. 그러니까 기계를 위장한 사람이 답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의사양반…/-이보세요 여기는 중환자실입니다./-뭐? 내가 중환자실에…/-뒈진다 그만해라.”
이 질문과 답변의 맥락은 알고 보면 놀랍다. 이 코너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 ‘고자라니’의 대사다. 즉 질문을 올린 이가 ‘고자라니’의 대사를 읊자 ‘심심이’도 바로 그 대사로 맞장구를 친 것이다.

어쨌든 궁금하긴 하다. 시사 현안에 대해 심심이는 뭐라고 답할까. 심심이 어플을 다운로드 해서 설치해봤다.
BBK에 대한 심심이의 답은? “주어 없음”이다. 4대강? 꽤 긴 답이다. “4대강 사업은 국민의 혈세로 쓸데없는 데다 돈 처박는 짓거리예요.” 오세훈? “오세이돈!!!!”
최근 인터넷 시사이슈를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이 답은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최근 서울의 수해 피해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이 관련 예산을 삭감해서 사고가 커졌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물의 신 ‘포세이돈’에 빗대어 생긴 신조어다.

아무튼 놀랍다.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답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비밀은 이 어플의 메뉴 중 하나인 ‘가르치기’다. 특정한 질문에 대한 답을 사용자가 미리 적어놓으면 질문의 알고리즘을 자동 분석해서 가장 유사한 답을 심심이가 내놓는 방식이다.

피식 웃고 지나갈 만한 이야기이지만 이 어플과 관련해선 얽힌 사연이 있다. 원래 심심이는 2002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최정회 이즈메이커 대표가 개발해 MSN에서 사용되던 어플이었다.
심심이가 꽤 인기를 끌자 2년 후인 2004년, 당시 이동통신회사인 KTF가 심심이를 개발한 최 대표 쪽에 모바일 SMS 서비스 제휴를 요청했다. 그런데 그해 7월 KT가 심심이의 모바일 상표권을 출원했고, 온라인 상표권을 갖고 있는 이즈메이커 측과 분쟁이 생겼다.

이 분쟁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즈메이커 측에서는 “중소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빼앗아가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MBC PD수첩에서는 심심이의 상표권을 둘러싼 KT와 이즈메이커 사이의 공방을 방영한 적이 있다.
KT 쪽에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문의해봤다. KT 쪽의 입장은 이렇다. “KT는 상표법에 따라 심심이 상표를 등록했으며 등록절차상 문제될 부분이 없음. 또한 상표는 아이디어와 달리 도용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빼앗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님.”

어쨌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상에서는 이즈메이커 측이 심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상표권을 KT가 갖고 있다는데 이건 가능한 일일까.
김영식 이즈메이커 차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PD수첩이 방영되고 나서 KT 쪽에서 ‘권리침해확인서’든가 그런 이름으로 문서가 날아왔다. 그쪽에서 오히려 자기네 사업영역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화 건 김에 물어봤다.

심심이에게 ‘케이티’라고 말을 걸면 “심심이를 돌려줘, 나쁜 넘들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이즈메이커 쪽에서 넣어둔 말은 아닐까.
김 차장은 “우리가 넣은 건 아니고 아마 PD수첩 등을 본 심심이 사용자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분노’해 가르친 걸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제가 된 어록 이외에도 사용자들이 심심이를 아끼고 정말 친한 친구처럼 느낄 수 있도록 추가메뉴를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건투를 빈다.

Posted by 정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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