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27ㅣ주간경향 956호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은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후 들려오는 망설이는 목소리. “여보세요…, 저 권○○라고 하는데… 기억하세요?”

백철 기자

권 할머니. 인터넷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별명은 경향신문 옆 건물 1층에 자리잡은 맥도날드에 매일 밤 어김없이 방문해 밤을 지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지난 6월 이 코너에서 기사를 쓴 뒤 퇴근 때면 유리창 너머 할머니의 상태를 지켜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기력도 많이 쇠한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는데, 최근 몇 주 간은 거의 쓰러질 듯 탁자에 기대 있는 모습이 많았다.

할머니의 다른 별명은 ‘원조 된장녀’다. 과거 공중파에서 할머니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튀김 하나를 사먹어도 백화점 식품코너를, 밥 한 끼를 먹어도 최고급 음식점을 고집했다”는 할머니의 과거가 조명됐다. 우려와 달리 할머니의 의식은 또렷했다.

할머니는 과거 방송에 대한 불만을 먼저 꺼냈다.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나왔는지는 잘 몰랐어요. 사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매도하는 이 사회에 대해 불신도 갖고 있어요. 결국 그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은 ‘자기 주제에 맞지 않게 고급만 좋아한다’는 비난인 셈인데….”

할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진실’은 이렇다. 과거 보도대로 할머니는 외국어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주일본 한국영사관에 3년간 근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외교부 유엔부에 입사해서 17년을 근무했다. “사실 정부종합청사에 근무하니까 시장 같은 데를 많이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백화점 같은 데를 가서 눈에 띄는 대로 끼니를 해결하는 식이었습니다. 시간도 많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과거는 그랬다 치고, 그렇다면 현재의 ‘고행의 길’은 왜 선택한 것인가.

권 할머니는 “그 사정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언급하길 꺼리다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직접. 보통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일인데, 저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바바리’를 벗지 않은 것도 중세 수도사들이 그랬듯 그것이 기도작업복이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실은 그게 문제예요. 교회에서 바바리를 벗지 않으면 그동안 지원한 월 10만원을 주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사정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매달 지원하던 10만원이 끊긴 지 3주가 되었는데, 너무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기자가 지난 6월 맥도날드 할머니 기사를 쓴 까닭은 당시 공중파에서 방영된 ‘전철역 화장실 삼남매 케이스’를 두고 대통령의 지시로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권 할머니의 경우가 바로 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관할구청이 제대로 할머니의 사정을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권 할머니는 “그때 구청 쪽 사람이 와서 면담하기는 했는데, 그 뒤로 다시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맥도날드 할머니는 방치된 셈일까. 당시 기자의 요청으로 방문했던 종로구청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할머니에게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취하라고 명함을 건넸지만 그 뒤 연락은 없었다”는 답변이다. 덧붙여 다시 한 번 방문해서 할머니의 사정을 청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세밑이다. 주위의 낮은 곳을 돌아보는 때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과거 그가 어떤 사람인가는 필요치 않은 정보다. 게다가 보도된 것처럼 ‘원조 된장녀’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Posted by 정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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